휘모리 장단에 몸을 맡긴다! 판소리복서 후기

2019. 10. 13. 20:43Movie/Movie review


🔔다른 곳에 옮기실 땐 출처 링크를 정확히 써주세요😊

(My Punch-drunk Boxer)영화 관람 후기


 -단편영화 뎀프시롤:참회록 을 장편으로 각색한 영화 '판소리 복서'


 예전엔 복싱을 소재로 한 영화가 참 많이 나오기도 했었고 나오면 어느정도의 흥행은 보장되었는데 요즘엔 아무래도 그 수도 적어졌고 대중들의 관심도 많이 줄어든 스포츠라고 생각된다. 복싱에 대해서 내가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확언 할 수 있는 건 선수들을 볼때면 정말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내 경기에 임하는게 느껴진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홀홀단신 사각 링 위에 올라 그 어떤 거추장스러운 템빨? 하나 없이 인간대 인간으로 붙는 진정한 결투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복싱이라는게 보통 피부에 윤기가 자르르 돌거나 푸짐하니 배가 뜨듯한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하는 스포츠라기보단 특별히 가진 건 없지만 근성 하나만큼은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헝그리 정신을 가진 악바리들이 출전하는 종목이라는 이미지가 아무래도 강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구기 종목들(을 얕보는 건 절대 아니고)이나 여타의 협동이 필요한 다른 스포츠에 비해 복싱은 선수의 혼이 실린 경기가 되어, 보는 사람까지도 혼연일체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심지어 경기장에 붉은 피까지 심심치않게 보이는 혈투로써도 확실히 관중들을 끓어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일단 복싱 영화라고 한다면, 태초에 록키가 있으셨고 그 후가 그러했듯이 앞서 말한 복싱이라는 종목이 주는 느낌들이 영화화되었을 때 주는 감동과 희열이 어느정도 기대되기 마련이고 어지간해서는 실패하지 않는 그런 안전 흥행 코드이다.


 하지만 그런 영화를 기대하신 분들껜 안타깝지만 판소리 복서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소재가 복싱이기 때문에 기승전결 확실하고 카타르시스 넘치는 성장 액션무비를 기대하고 보러갔다가는 실망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장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후반 즈음에 맛만 살짝 보여준다. 

 

 오히려 나는 사실 현란한 저 포스터를 처음 보고나서 들었던 생각이, '복싱의 화려한 여러 기술들을 시각적으로 극대화 시킨 영화인가? 볼거리가 많겠구나!  흠, 포스터의 대문짝만한 카피 문구('들어나 봤는가! 세계최초 유일무이 링위에서 흥이난다! 판소리 복서' 라는 카피임;)를 보면 약간 b급 판타지로 빠질 수 있겠단 생각도 드는데 큰 기대않고 마음 단디 먹고 보러가야겠다.'였다.😅


왜냐면 억지 웃음을 유발하려는 느낌이 문득 '튼튼이의 모험'이라는 영화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 이 영화가 난 너무 별로였어서...



 다시 또 말하자면 역시 그런 쪽도 전혀 아니었다. 요즘 같은 시대(영화배경은 살짝 요즘시대가 아니긴 하다만,,,)에 인물들이 너무 착한게 뭐 판타지라면 판타지일수도.



 판소리 복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영화다. 거기에 귀여움과 착함이 더해진 현실적인 휴먼 드라마라고 해야할까나. 보기 전부터 이 영화는 내 취향에 안맞을거야, 난해하고 이상한 코믹함들 범벅이겠지라고 생각하고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더 잔잔하고 주인공 병구의 착함에 마음이 사르르 눈녹듯 녹았다. 



 그동안 사람의 요소를 설명함에 있어서 여러 미덕들 중 '착함'이라는 것이 '애는 착해' 처럼 딱히 대단한 포인트라고 여겨지지 않고 남에게서 넌 착하잖아 소리를 들어도 내가 다른 큰 매력이 있진 않나, 그럴바엔 차라리 나쁜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서는 착하다는 게 참 소중하고도 흔치않는 따듯하게 하는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동네 강아지가 꼬마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구해준다거나 체육관 관장님 말씀이라면 군말없이 잘 듣고 예의도바르며, 틱틱대고 자기에게 싸가지 없게 대하는 친구에게도 원래 착한애라며 되려 감싸주기까지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자신에게 너무 착하다며 바라봐주는 민지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하며 작은 일에도 항상 칭찬과 응원을 보탠다.  


 어쩌면 바보같아 보일 정도지만 사실 주인공 병구가 처음 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과거 씬들을 보면 꿈을 찾게 도움을 주는 친구나 관장님께도 화를 낼 줄 알고 상처도 주는 인물이었다. 그랬던 병구였는데 가족력 때문에 치매의 일종인 '펀치 드렁크(Punch drunk)'증상때문인지 몰라도 마치 '화'라는 감정이 사라져 버린 듯 하다. 


  

 실력을 갖춘 복싱 유망주였다가 한 번의 판단 실수로 프로 복귀가 힘들어져 나락의 길을 걷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새롭게 친구와 약속했던 '판소리 복싱'으로 세계적 복싱 선수가 되길 꿈꾸는 병구. 좀 생소한 조합이긴 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으로 꿈을 놓지 않는 그의 열정 또한 소중하다. 


 영화 '라라랜드' 속 대사 처럼 사람들은 타인의 열정에 끌리기 마련이고 크게 대단하지 않은 꿈이라고 해도 죽기 전 후회할 바에 하고싶은 걸 포기말고 도전하자는 병구의 말 자체가 어쩌면 평소 많이 듣던 그냥 진부하고 수많은 말들 중 하나로 의미없이 흘러가게 될 수도 있는데 직접 몸소 보여주는 병구덕에 말에 힘이 생기고 영화보면서 괜히 나도 하고 싶은 일들을 한 두가지 떠올렸다.




(착한 병구가 착한 민지를 만나 나오는 시너지 넘치는 귀여운 영상들과 강아지를 아끼는 모습에(난 동물이 너무 좋음) 소소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록키에 Bill Conti-Gonna Fly가 있다면 판소리 복서에는 휘모리 장단과 수궁가가 있다. 판소리 장단에 맞추어 현란한 복싱을 보여주는 독특한 장면들 역시 보는 재미가 있다. 거기에 재치있는 개사까지 무언가 그런 참신하고 착한 영화를 찾는다면 추천한다.

 펀치 드렁크로 기억을 잃어가는 병구, 점점 사라져가는 필름 사진, 시대가 끝났다고 하는 복싱 그리고 고장난 티비를 그냥 버리고 새로 사라는 기사님까지 아무래도 펀치 드렁크로 인해 어느정도 마음 아픈 이야기들도 있겠지만 병구 말처럼 시대가 끝났다고 해서 우리가 끝난 건 아니고 잊혀져 간다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러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아쉽지만 그래야 또 더 아름답다고 느끼시는 분들에게도 이 영화를 권한다.


 공교롭게도 영화보기전 바로 이 전 포스팅에 ( [IT ✗ Science news] - 지난 밤 꿈은 왜 기억나지 않을까? 기억력과 렘수면(REM)의 관계 ) 꼭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이 좋은 게 아니고 망각한다는 건 어쩌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연구에 대한 글을 적었는데, 판소리 복서가 마침 그런 주제에 대한 영화라 또 나에겐 의미있게 다가왔다. 지난 날 가장 소중했던 친구가 해줬던 재밌는 이야기를 병구가 더 행복한 이야기로 각색할 수 있었던 것도 사라져 가는 기억이 만들어낸 좋은 점이리라. 


 이 역을 위해서 엄태구 배우는 6개월간 복싱을 배웠고 혜리 배우도 장구를 2개월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엄태구 배우 꽤 폼이 난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그가 이 영화를 시작으로 주연으로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 연 것 같아 응원해주고 싶다.

 




[Movie/Goods] - [판소리 복서] 아티스트 뱃지

조커(Joker,2019) 기대가 컸던 탓이었는지, 아쉬웠던 관람 후기






😈다른 곳에 옮기실 땐 출처 링크를 정확히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