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9. 19:07ㆍMovie/Movie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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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n Knight (2021)
130분
15세 관람가
감독: 데이빗 로워리
출연: 데브 파텔,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엘 에저튼, 베리 케오건, 숀 해리스
영화 후기입니다. 스포주의
영화 개봉 전부터 기대가 많았던 영화다. 우선 이러한 장르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이 되는 '가웨인경과 녹색의 기사'는 (반지의 제왕으로 익히 알려진 작가) J.R.R 톨킨이 현대어로 번역해 내 놓은 유명한 중세시대 영국문학 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작은 엑스칼리버 전설로 유명한 아서왕과 관련 된 전설 중 하나인 가웨인경의 이야기를 한다.
가웨인은 카멜롯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며 때가 되면 기사가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리스도가 태어난 크리스마스 날,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은 갑자기 등장한 녹색의 기사를 마주하게 된다. 이때 영화에서 아서왕이 마법사 멀린과 살짝 눈맞춤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녹색의 기사는 그들에게 목베기 게임을 제안한다. 그는 먼저 도끼로 자신을 쓰러뜨린자에게는 용감함과 명예의 전유물로써 자신의 도끼를 가질 수 있게 될거라고 한다. 그러나 일년 후 자신에게 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음을 당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버린다.
이 게임에 나섰던 가웨인은 아서왕에게 받은 엑스칼리버로 녹색의 기사 목을 내리쳤고 녹색의 기사는 자신의 머리를 들고 녹색 예배당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사라진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문득 그 녹색의 기사는 과연 악일까 선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연을 나타내는 녹색이니 단순히 심판의 존재나 뭐 그런게 아닐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대자연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의지를 가지고 일부러 아량을 베푼다거나 시련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기때문에 녹색의 기사는 그런 면을 나타내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저 자연적인 일이고 원칙을 지켜나갈 뿐이다. 또한 서양권에선 녹색이 생명을 뜻하기도 하지만 부패나 악을 상징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약속의 일년이 지나고 가웨인이 자신의 명예를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되고 그 과정의 여러 난관들을 거치며 진정한 기사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상황 족족 기사답지 못한 행동들을 보이는데 길을 알려준 사내에겐 소소한 보답조차 하지않아 억지로 굴복당하게 되거나 자신의 머리를 찾아달라는 여인에겐 찾아주면 자신에게 뭘 해줄 수 있냐고 되묻는다. 막바지에 가서는 한 성주의 도움으로 쉬며 개인정비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데 그런 성주 아내의 유혹에도 쉬이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상깊었던 것은 가웨인이 사랑하던 에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성주의 아내모습이었는데, 이는 마치 '유혹'이라는 난관의 키워드에 딱 들어맞아 보인다. 성주는 가웨인에게 자신은 사냥감(여우)을 잡아서 줄테니 너는 이 성안에서 자신에게 새로운 무언갈 달라고 요구한다. 이는 나중에 성주의 아내와 나눈 키스를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완성되어진다. 어떠한 해침도 무력화 시킨다는 마법의 벨트는 입도 뻥긋도 하지 않고 말이다. 원작에서는 나중에 녹색의 기사 정체가 사실 성주였다고 나오는데 영화는 그렇진 않고 약간의 비틀기와 재해석을 가미했다. 극중 나오는 여우의 경우에도 감독이 말하는 여우를 좋아해서 사냥감에서 차용해 본인이 넣었다고 한다.
결국 녹색의 기사를 마주하게 된 가웨인은 자신의 목을 내놓게 되지만 여기서조차 기사도 정신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결국 도망자의 길을 택하고 마는 것이다. 사실 가웨인은 긴 여정속에서 만난 인물들에게 그동안 항상 '당신은 기사가 아니다'라는 팩폭을 들으며 왔었는데 마지막에 와서까지 그 정점을 찍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이 영화에서는 기사도 정신이 결여 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작 가웨인은 그 누구보다 명예를 중시하고 기사가 되고 싶어하는 인물로 그려냈다. 그래서 원작과 달리 영화에선 '그냥 행복함을 추구하며 살면 안되냐'는 연인 에셀과의 대화에서도 그렇고 마치 무용담과 명예로 치장된 기사도 정신이 밥이라도 먹여주냐는 뉘앙스를 뿜으며 비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벨트를 몸에서 한시도 떼어내지 못하고 도망친 가웨인에게 남은건 빈 껍데기 같은 삶만 남을 뿐이다. 사랑하던 여인을 저버렸고, 전쟁에서 패하고 백성들에겐 돌팔매질을 당하는 몰락한 왕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살았지만 살아있는게 아닌 인생. 녹색 기사의 도끼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러자 뭔가 깨달은 듯한 가웨인은 도망치지않고 자신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기가 여기까지 와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죽음을 직면할 용기를 마침내 내게 된다.
원작에서는 그냥 녹색의 기사가 이 부분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 장하다며 다시 돌려보내고 끝나는데 영화에서는 원작마냥 살려주려나 싶은 분위기를 보여주다가 '그래 용기있네, 그렇지만 게임은 게임이지 원칙대로 헤드 포 헤드!!'를 외치는 녹색의 기사를 보여주며 끝난다. 이렇게 영화는 겉보기에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되서 정말 가웨인의 목이 잘렸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잘려버리는게 더 내 취향이긴 하다.) 감독이 원작과 똑같은 방향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비틀었던 건 아니었을 듯 싶어서,,,할거면 확실하게 비틀기!
엔딩 크레딧을 보다보면 쿠키영상 비스무리 한 것이 말미에 잠깐 등장하는데, 어린 여자 아이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왕관을 줍는 영상이다. 녹색의 기사가 가웨인을 살려줘서 사랑하는 에셀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닌거 같다. 어쨌거나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가웨인이 진정한 기사로 거듭나기 위해 성장하는 여정이라고 생각되고, 그 방점은 마지막 가웨인의 목에 도끼를 겨누는 녹색 기사의 모습에 찍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이 꽤나 인상적인데, 전체적으로 어둡고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는 [그린나이트]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들이라고 생각했다. 보면서 베리 케오건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킬링디어]도 잠깐 생각이 났고, 잔혹한 동화같은 느낌에서 [테일 오브 테일즈]라는 영화도 떠올랐다.
배급사쪽에서 영화 홍보 문구를 반지의 제왕 어쩌구 이런식으로 하는 걸 봤는데 별로 득이 되는 홍보 방식은 아닌 것 같았다. 뭐 톨킨이 연관되어 있긴 하다만. 주변에서도 그 카피라잇때문에 중세배경의 판타지 영화인가 싶어서 가벼이 보러 간 사람들은 만족을 못한 후기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혹시 그런 이유에서 보려했다면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린나이트]가 단순히 판타지 영화라고 하기에는 꽤나 어둑하고 아름답게(?) 묵직한 영상들과 함께 기괴한 선율들 속 어딘가 비틀린 전설의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는 것을 잘 나타내지는 못하는 거라 생각한다. 올해는 시국이 이래서 꽤 많은 영화들이 개봉이 연기가 되기도 해 평년에 비해 많은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린 나이트]가 가장 좋았다.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뭔가 더 이야기 할거리가 파생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조금 잔잔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해서 몸이 피로하다거나 그런 날은 피하길 바라며.
A24를 믿는다면! 놓치기 아쉬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집에서 이 영화를 보는 걸 상상해보니 화면도 너무 어둡고 그래서 되도록이면 극장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상영관이 많지는 않더라..)
[그린나이트]의 가웨인은 결국 기사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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